[영구미제사건 File] 19.마츠오카 신야 실종사건 (1989)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라고 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지배 아래에 있다.
태초부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란
그야말로 끊임없는 것이었으나 ㅡ이를테면, ‘타임머신’의 존재와 같은ㅡ
여전히 ‘시간’을 정복하고자하는 인간의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이순간도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여행중이라는 것이다.
“1sec/1sec 이라는 아주 느린 속도로”
요컨대, 약 ’20초’안에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자판기 커피를 뽑는 것? 심호흡을 두어번 하는 것?
100M를 전력질주하거나, 이를테면 방금전까지 있던 아이가 연기마냥 사라져버린다거나―
단언컨대, 20초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20초’를 되돌리지 못해 아직도 가슴을 찢고있는 부모에게는 반드시.

<마츠오카 신야군. 당시 4세>
1987년 3월 6일. 일본 도쿠시마현 사다미츠초.
이바라키 현에서 거주하던 마츠오카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와 세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었는데,
그 중 두번째 자녀이자 장남이 ‘마츠오카 신야 (당시 만 4세)’ 였다.
사건은 당시 신야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하기위해 마츠오카 가족은 짐을 챙겨 급히
그들이 살던 이바라키현으로부터 500km 이상 떨어진 도쿠시마 현으로 향했고,
신야의 어머니인 마츠오카 케이코 씨의 친척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도쿠시마 현의 마을모습>
다음날인 3월 7일. 아침 8시 경.
신야의 아버지였던 마츠오카 마사노부씨는 기분전환을 겸하여
아침식사 직전 신야를 포함한 아이들과 가볍게 산책을 나갔다.
그날 묵었던 친척집이 위치한 ‘사다미츠초’는 한적한 분위기의 동네였고,
친척집은 산 중턱의 고도 200m 가량에 있는, 산속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었는데
그 주위에 건물이라곤 그 집 한 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사노부 씨는 10분가량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가 친척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분명 아이들은 마사노부의 뒤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친척집은 산간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집 앞에
10m가량의 돌계단이 존재했는데, 마사노부씨는 신야가 돌계단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집 현관으로 들어가 아내 케이코에게 안고있던 막내아들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활동적이었던 신야가 ‘산책을 더 하고싶다’ 고 말했기 때문에,
마사노부씨는 신야와 함께 산책을 더 할 요량으로
곧장 뒤돌아서 집앞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돌계단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마사노부는 신야가 돌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것을 보았고
그가 현관 문 옆에 있던 아내에게 아들을 건네주고, 다시 돌계단으로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 남짓이었다.
마사노부씨는 곧 이성을 되찾아, 신야가 주위에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변 산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야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곧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과 마을의 소방단원들까지 동원되어
인근 산을 쥐잡듯 뒤졌으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마츠오카 마사노부씨는 3월 7일 오전 10시,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당초 경찰은 신야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라고 판단,
자경단원들과 주민들을 동원해 산 주변과 마을 외곽까지 수색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약 200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3개월 간 조사했지만
신변확보는 커녕 일말의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20초도 채 되지않는 시간동안 아이를 납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마츠오카 가족이 마을에 왔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은
신야가 실종된 다음에야 알았을 정도였기 때문에 계획적인 유괴의 가능성은 거의 닫아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ㅡ

사건이 발생한지 9일이 지난 3월 16일.
신야군의 가족은 친척집에 남아 신야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일체 소식이 없자 우선 3월 17일에 이바라키현의 본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친척집으로 전화가 울려왔다.
전화는 이바라키현의 세이케이 유치원에서 걸려온 것이었는데,
당시 신야의 누나였던 장녀가 다니던 유치원이었다.
전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같은 세이케이 유치원에 다니는 나카하라 마리코의 학부모인데, 세이케이 유치원의 달님반에서 신야군의 실종으로 마츠오카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문금을 모았습니다. 위문금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언제 돌아오실 예정이신가요?
당시 전화를 받았던 케이코씨는 예정대로 “내일 돌아갈 생각이다” 라고 말했고,
통화는 그대로 끝이 났다.
그리고 마츠오카 가족은 예정대로 17일에 이바라키현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서도 유치원에서 연락이 없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케이코씨는 마침내 세이케이 유치원에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세이케이 유치원 측의 대답은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 위문금을 모은 적도 없으며, 나카하라 마리코라는 아이는 우리 유치원에 존재하지 않는다 “

전화를 받았던 케이코씨는 전화를 받았을 당시 여자의 목소리가
끝자락의 억양이 살짝 놀라가는 도쿠시마 사투리 였음을 기억해냈는데,
이는 그 전화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전화였음을 반증했다.
첫번째, 여자가 도쿠시마 사람이었다면
500km 이상 떨어진 이바라키현의, 실종되지도 않은 신야군의 누나가 다니는 유치원의 이름(세이케이)을 어떻게 알 수 있었냐는 것이며
두번째, 여자가 이바라키 현에서 사는 사람이었다면 마츠오카 가족의 집전화가 아닌 도쿠시마에 있는 외가 친척집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걸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전화내역을 토대로 역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 후 그 여자 와는 연락이 완전이 두절되었기 때문에ㅡ 이 정체불명의 전화는 수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ㅡ 마츠오카 신야가 살아있다면 26살이 되었을 2013년 현재에도, 마츠오카 신야의 신변에 대한 정보는 일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 기타 목격담
– 제보들 –
실종 사건 후 신야의 아빠 마사노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한다.
수사에 필요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함이었다.
50회 이상 TV에 출연했고 집 전화번호까지 공개하며 제보를 호소했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수 많은 목격 증언이 있었고 그 중에는 신빙성이 높은 것도 있었다.
90년 –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의 한 백화점 앞에서 신야군을 쏙 빼닮은 아이를 목격했다.”
이 제보를 받은 마사노부는 바로 요네자와로 향했고 백화점 주변에서 전단지를 배포했다.
그리고 한 주부가, 근처 공원의 매점에 신야로 추정되는 아이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91년 – 시코쿠 88 순례 사찰 중 21번째 절인 타이류지에서 흰소복을 입은 신야로 추정되는 아이의
목격담이 들려왔다. 그 아이는 5~6살 정도로 보였고 부모로 보이는 남녀와 같이 있었는데 목격자에
따르면 그 아이의 부모 치고는 나이가 너무 들어보였다 한다.
이 제보를 받은 케이코는 87, 88번째 절에서 그들을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97년 – 한 직장여성이 요코하마의 지하철에서 신야를 쏙 빼닮은 아이를 목격했다고 제보해 왔다.
그 여성에 따르면 아이는 자신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신야와 닮았었다 한다.
소년의 옷차림은 남루한 편이었고 손목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는데 손목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한다.
걱정이 된 여성이 말을 건네자, “아저씨에게 평소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여장을 시킨다”고 말했다 한다.
여성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를 하라 했고, 그 후 한 차례 전화가 왔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98년 – 주고쿠 지방의 한 비디오 대여점에서 제보가 있었다.
신야군의 현재 나이 추정 사진과 쏙 빼닮은 아이가 영화 타이타닉의 포스터(혹은 우편엽서, 사건을
소개한 글에서 포스터인지 우편엽서인지 확실히 안하고 있음)를 사 갔고, 아이는 가게 앞에 서 있던
야쿠자 냄새가 나는 남자에게 ‘이거면 됐어?’라는 식의 제스처를 취한뒤 계산을 하고 나갔다 한다.
직원은 즉시 점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점장은 바로 가게를 나가 둘의 모습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 후 경찰에 신고했지만, 역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2000년 – 케이코 친구의 지인이 제보를 했는데, 신야가 실종된 다음 달, 도쿠시마현의 히와사 해안에서
신야와 닮은 아이를 목격했다 한다. 그 아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고 있었는데 아이한테
말도 전혀 걸지 않고 부모 자식 간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수상했다고 한다.
목격자는 도쿠시마 출신이기에 신야군이 실종된 것을 사건 초기 부터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도쿠시마 지역에 대대적으로 보도 됐었기 때문에 많은 도쿠시마 사람들이 신야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신야가 맞는지 아닌지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남자는 아이를 감추려는 듯 등을 보였고
바로 흰 승용차를 타고 해안을 떠났다 한다.
참고로 그 목격자는, 사건 당시에는 사건에 휘말리는게 싫어서 제보를 하지 않았다 한다.
목격담 출처 http://blog.naver.com/harimi82?Redirect=Log&logNo=601593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