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정말 부정선거를 저질렀는가?
이 무슨 당연한 말을 가지고 헛소리를 하나 싶은데, 이승만은 당시 당선이 확정되어 있었다.
오히려 부통령선거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을때였는데, 무슨 말인가 알아보자
사람들이 많이 하는 오해는 이승만은 315부정선거를 통해서 장기 집권을 노렸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과 조병옥 후보가 경선을 겨루었고
부통령은 이기봉과 김준연이 후보로 나왔는데
선거날인 3월 15일 이전에 조병옥은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서 2월 15일 이미 사망하였다.
이승만 단독후보로 나왔으며 사실상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하게 되었다.
실제로 부정선거는 3월15일 같이 하는 부통령 선거의 후보 당선을 위해서 일어 났는데 이는 이기봉의 당선을 위해서 저지른 것이었다.
민주당은 부통령 선거와 민의원의원 선거에서 선전을 하며 자유당을 위협하고 있었는데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내무부 관료들과 이정재 임화수등 정치 폭력배를 동원하여 부정선거와 개표 조작을 감행했다.
야당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고 주민들에게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하도록 압박하였다.
“야당계 자치단체장에 압력”. 《경향신문》. 1959년 1월 17일.
부정 선거가 폭로되자 각지에서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를 시위하던 학생들 중 김주열 군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화장된 유골이 마산 앞바다에 유기되면서 후일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 데모대와의 대화를 통해 이기붕 부통령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후 즉각 하야하였다.
이승만은 오히려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는데 책임을 졌다.
이승만은 하야를 하고 미국으로 망명을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발전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뜻이 숨어 있었다.